200Km 울트라마라톤 최고령 기록 김태식씨
글쓴이 : 용재식 ()
      조회 : 256회       작성일 : 2003-09-26 11:20  

난 멈추지 않는다... 65세 마이웨이

'출발 전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. 2백㎞를 달려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
다. 아내와 세 딸, 동호회 회원들 모두 말렸지만 꼭 해내고 싶다. 모든 것
은 5년 동안 뛰어다닌 내 체력이 알아서 할 것이다.(중략) 70㎞를 지날 때
부터 조금씩 아팠던 왼쪽 다리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. 진통제를 네 번
이나 먹었지만 통증은 가시지 않고 속만 쓰리다. 1백80㎞를 넘어서자 정신
이 몽롱해진다. 분명히 처음 뛰는 길인데 왔던 길을 또 온 것은 아닌지 혼
란스러워진다.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 길이 제주로 가는 길이 맞는지 물어봤
다. 다리가 천근만근이다. 걷고 또 걷고 신물이 나게 걸었다. 어느덧 제주
시내가 보인다. 마지막 힘을 내본다. 골인. 34시간28분 만에 2백㎞ 완주,
내 자신이 자랑스럽다.' (울트라마라톤 달리기 일지 중)

마라톤 풀코스 31회 완주, 울트라마라톤 4회 완주, 다섯 번의 해외 마라톤
대회 참가….황영조나 이봉주의 얘기가 아니다. '인생은 60부터' 라는 말
을 온몸으로 보여준 김태식(金泰植.65) 전 국민리스 대표이사가 바로 그 주
인공.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마라톤을 예순 살에 입문해 5년 만에 2
백㎞ 울트라마라톤 최고령 기록 보유자가 되기까지 김씨는 철저한 자기관리
로 아마추어 마라톤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.

"국민은행에서 30년 넘게 재직하면서 주말에는 주로 등산을 했습니다. 이따
금 골프 모임도 나가고요. 그러던 중 1998년도에 회사의 구조조정 문제로
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. 직원들을 정리해고해야 하는데 노
조에서는 파업을 하겠다고 맞서고…. 그때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괴로웠고
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. 마침 이때 트라이애슬론을 하
던 후배가 마라톤을 권하더군요. 혼자 하는 운동이라서 이거다 싶었죠."

처음부터 풀코스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. 뛰다보니 스피드도
붙고 거리도 점점 늘어났다. 하지만 살이 10㎏ 이상 빠지고 얼굴색도 검게
변하자 부인 용혜자(62)씨가 "나이를 생각해야죠. 그러다 큰일나겠어요"라
며 말리고 나섰다.

"얼굴이 반쪽이 되고 낯빛도 바뀌니까 주위에서 무슨 암에 걸린 줄로 알더
군요. 하지만 달릴 때가 제일 행복한데 어쩌겠습니까? 결국 입문 9개월 만
에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해 4시간53분의 기록으로 완주했죠."

그후 김씨는 마라톤 대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노익장을 과시
했다.

"언론사 주최 대회는 거의 다 나가봤습니다. 2주 만에 출전한 경우도 여러
번 있었고요. 지난 4월에는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꿈의 무대인 보스턴 대
회에도 참가했습니다. 참가자 1만7천여명 중에 1만3천1백30등 했어요. 이
정도면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죠?"

한번도 하기 힘든 마라톤 풀코스를 31번이나 완주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
적은 없었을까?

"마라톤 입문 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지금껏 한번도 중도에 포기한
적이 없다는 것과 제한시간 내에 모두 완주했다는 겁니다. 2000년 전주군
산 대회 때는 몸살이 심하게 났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달렸습니다. 울트라마
라톤을 마친 후에는 응급실에 두 번 실려갔는데 의사 얘기가 너무 심하게
운동을 해서 노폐물을 걸러내는 사구체가 찢어졌다고 하더군요."

울트라마라톤 후 부인 용씨는 다시는 뛰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. 의사도
김씨에게 "나이가 있으니 자제하는 게 나을 것"이라고 경고했다. 하지만 김
씨는 요즘도 매일 10㎞ 이상을 달린다. 정해진 코스는 없다. 서울 여의도
한강 둔치에서 출발해 반포까지 뛰어갔다 오거나 집 근처 앙카라공원을 돌
기도 한다.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여의도에서 탄천.복정역을 거쳐 분당 야
탑역까지도 달린다.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'달리기 일지'를 쓴다. 기자에
게 보여준 일지에는 그날그날 뛴 코스와 느낀 점들이 간략하게 정리돼 있었
다. 날짜 옆에 암호처럼 쓰여진 m:339k, d:15k, y:2417k 가 무슨 뜻인지 궁
금했다.

"아, 그거요? 오늘 뛴 거리가 15㎞이고 이달 들어 오늘까지 3백39㎞, 올해
총 2천4백17㎞ 달렸다는 뜻이죠. 일기는 안 써도 달리기 일지는 꼭 씁니
다. 제 마라톤 인생의 소중한 기록이니까요."

김씨는 마라톤을 시작한 후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. 73㎏에 늘 피로했
던 몸은 64㎏의 군살 없는 몸매로 바뀌었고 즐겨하던 술도 마라톤을 위해
절제하게 되었다.

"30대 못지 않은 체력을 되찾은 게 제일 큰 수확입니다. 마라톤을 하면서
몸으로 다 배출되니까 콜레스테롤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. 또
체력과 체형이 동시에 좋아집니다. 병도 안 걸리고 앓던 병도 다 낫습니
다." 김씨의 마라톤 예찬론은 끝이 없다. 2년 전부터는 전.현직 국민은행
직원들이 주축인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회 한강달을 이끌면서 매주 모여 한
강변을 달리고 각종 대회에도 함께 출전하고 있다.

11월에 있을 1백㎞ 울트라마라톤을 목표로 이달 말 32번째 풀코스 대회에
출전하는 김씨에게 언제까지 달리기를 계속 할거냐는 질문을 던지자 "마라
톤은 인생"이라며 달릴 힘이 남아있는 한 달리겠다고 말했다.

"울트라마라톤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다시는 안 뛰겠다는 생각밖에 없습
니다. 하지만 대회가 끝나면 금세 잊고 다시 또 달리고 싶어지죠. 견디기
힘들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끝까지 참아야만 완주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
니다.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. 하기 싫은 것, 고통스러운 것을 참아
내야 성공할 수 있죠."

노승옥 기자 중앙일보







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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