가정 환경 조사서
글쓴이 : 정영철 ()
      조회 : 318회       작성일 : 2003-06-19 16:02  
가정 환경 조사서


지난 새 학기 때 일입니다. 선생님이 가정환경조사서를 나누어주며 등본
한 통과 반명함판 사진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.

저는 새 학기마다 그랬던 것처럼 또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. "아빠 안 계
신 사람 손들어!" 전 못 들은 척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.

문제는 등본이었습니다. 집으로 돌아와 애꿎은 엄마에게 화를 냈습니다. 가
정환경조사서를 엄마 앞에 놓아두고는 제 방으로 "에이, 등본은 안 낼 거
야" 하고 중얼거리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.

며칠 뒤 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. "지현아, 부모란 두 곳 모두에 엄마 이름
을 썼던데 잘못 적은 거지?"

전 대답도 못하고 눈물만 그렁그렁하다 결국 고개 몇 번 끄덕이고 돌아섰습
니다.

그때 엄마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더군요.

"지현아, 아빠가 없는 건 흠이 아니란다.

다만 평범한 인생을 사는데 조금 불편할 뿐이지.

아빠란에도 엄마 이름을 적었으니, 선생님이 묻거들랑 '울 엄마는 아빠 노
릇 엄마 노릇 둘 다 무지 잘해 내시기 때문에 엄마에게 일인이역을 주었
다' 고 대답하렴. 알겠지?"

그날 전 아이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갔
습니다.

그리고 하루 꼬박 근심하며 적은 쪽지 하나를 선생님께 내밀고 줄행랑을 놓
았습니다.

선생님이 제 이름을 부르시는데도…. 쪽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.

"선생님! 부모란에 엄마 이름을 두 번 적어 놓은 건 잘못 적은 게 아니에
요.

울 엄마는 어떨 땐 무섭지만 자상한 아빠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땐 다정하면
서도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도 해요.

그래서 전 결코 외롭지 않아요. 선생님! 울 엄마 참 욕심꾸러기죠?"

- 이지현 님 -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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